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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ENTJ 맞아요. 회사에서 검사할 때마다 늘 그렇게 나왔거든요."

해외영업을 하던 시절 함께 일했던 지사장님이 하신 말입니다. 목표를 세우면 밀어붙였고, 회의는 늘 결론부터 시작했습니다. 누가 봐도 ENTJ였습니다. 그런데 몇 년 뒤 그분이 긴 휴직을 마치고 돌아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쉬는 동안 집에서 다시 해 봤는데, 이번엔 ENFJ가 나오더라고요. 이상하게 그게 더 편해요."

오늘은 그 '이상하게 더 편한' 결과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진짜 MBTI

한국에는 정말 ISTJ와 ENTJ가 많을까

국내 MBTI 검사 자료나 여러 조사를 보면 ISTJ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유형으로 자주 꼽힙니다. ENTJ는 전체 비율로 보면 많은 유형이 아니지만, 제가 기업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는 유독 자주 보였습니다. 팀장, 임원, 대표가 모인 자리일수록 TJ 유형의 손이 많이 올라갔습니다.

물론 실제로 이 유형인 분들이 많아서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강의를 여러 해 하다 보니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이분들 중 일부는 '타고난 선호'가 아니라 오랜 시간 몸에 밴 역할로 답한 것은 아닐까 하는 궁금증입니다.

 

한국 사회가 칭찬하는 모습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칭찬해 온 모습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 규칙을 지키고, 맡은 일을 빈틈없이 해내는 사람
  • 감정보다 결과로 말하는 사람
  •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
  • 조직의 목표를 위해 앞장서서 이끄는 사람

앞의 세 가지는 ISTJ가 자연스럽게 잘하는 모습이고, 마지막은 ENTJ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학교에서, 군대에서, 회사에서 이런 모습으로 칭찬받고 승진하다 보면, 원래 선호와 상관없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몸에 익습니다. 지난번 원가족 이야기에서 가족이 모두 T라 T를 학습한 F형 후배를 소개했는데, 사회도 비슷한 일을 합니다. 가족 대신 조직이 가르치는 것뿐입니다.

오래 입은 옷은 내 몸에 맞춰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처음부터 내 치수였는지는 따로 확인해 봐야 합니다.

 

결과지 두 장을 나란히 놓고 보니

지사장님의 두 결과를 나란히 놓으면 이렇습니다.

  회사 워크숍에서 휴직 중 집에서
결과 ENTJ ENFJ
답할 때 떠올린 나 지사장으로서의 나 아무 직함 없는 나
"결정할 때 무엇을 먼저 보나" 목표와 숫자 그 결정으로 영향받을 사람들
검사 후 느낌 "맞긴 맞지" "이게 더 편하다"

둘 다 그분의 모습입니다. 다만 하나는 '해야 해서 잘하게 된 나'이고, 다른 하나는 '하고 싶어서 편한 나'에 가까웠습니다. 실제로 그분은 숫자로 팀을 이끌면서도, 퇴근 후에는 늘 팀원 한 명 한 명의 사정을 마음에 걸려 하던 분이었습니다.

 

MBTI가 묻는 것은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MBTI는 능력 검사가 아니라 선호 검사입니다. 무엇을 잘하는지가 아니라, 아무도 요구하지 않을 때 무엇이 더 편하고 자연스러운지를 묻습니다. 그래서 MBTI를 만든 쪽에서도 검사를 받을 때 '회사에서의 나'나 '되고 싶은 나'가 아니라, 신발을 벗고 편히 쉬는 상태의 나를 떠올리며 답하라고 안내합니다.

문제는 직함과 역할을 오래 지고 산 분일수록 그 신발을 벗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질문을 읽는 순간 자동으로 '팀장이라면 이렇게 해야지'라는 답이 먼저 떠오릅니다. ISTJ와 ENTJ가 많이 나오는 이유 가운데 일부는 여기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직함을 내려놓고 검사하는 방법

  1. 장소와 때를 바꾸기 회사, 연수원이 아니라 휴가 중이나 주말 오후처럼 일 생각이 덜 나는 때에 합니다.
  2. "해야 한다"와 "하고 싶다" 구분하기 문항마다 지금 고른 답이 의무감에서 나온 건지, 정말 편해서 나온 건지 한 번 더 묻습니다.
  3. 직함 이전의 나 떠올리기 직장에 들어가기 전, 20대 초반의 나라면 어떻게 답했을지 생각해 봅니다.
  4. 에너지로 확인하기 하고 나면 지치는 일과, 오래 해도 힘이 나는 일을 적어 봅니다. 잘하지만 지치는 일은 학습된 모습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5. 오래된 친구에게 묻기 직장 동료가 아니라 학창 시절 친구에게 "나 원래 어떤 사람이었어?"라고 물어봅니다.

결과가 그대로 ISTJ나 ENTJ로 나와도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그게 정말 여러분의 모습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요한 건 결과가 바뀌느냐가 아니라, 그 결과가 내 몸에 맞는 옷인지 확인해 보는 과정입니다.

 

은퇴를 앞둔 분들께 특히 권합니다

직함은 언젠가 내려놓게 됩니다. 그때 '회사에서의 나'만 알고 있으면, 직함이 사라진 자리에서 내가 누구인지 막막해지기 쉽습니다. 반대로 진짜 선호를 알고 있으면, 은퇴 후 무엇을 할 때 편하고 즐거운지 방향을 잡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지사장님도 지금은 숫자 대신 사람을 돕는 일을 하며 지내고 계십니다.

MBTI 검사지 앞에서만큼은 직함도, 체면도, 맡은 역할도 잠시 내려놓으세요. 그 빈자리에 남는 모습이 여러분이 오래 잊고 지낸 진짜 나일지도 모릅니다.

회사에서 한 검사와 혼자 편하게 한 검사의 결과가 달랐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어떤 결과가 더 나답게 느껴졌는지 댓글로 나눠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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