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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영업팀에서 일할 때 모시던 부장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전형적인 ISTJ였습니다. 거래처별 과거 이력을 다 꿰고 있었고, 숫자와 근거 없이는 어떤 결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후배들 사이에서는 "정확하지만 차가운 분"으로 통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장님이 쉰을 넘기고 나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회의가 끝나면 풀이 죽은 후배를 따로 불러 커피를 사 주셨고, 보고서에 빨간 펜을 대기 전에 "이거 만드느라 고생했지"라는 말을 먼저 하셨습니다. 오늘은 그 부장님 이야기로 MBTI의 '3차 기능'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네 가지 기능의 순서
지난 글들에서 주기능, 부기능, 열등기능을 차례로 다뤘습니다. 사람마다 네 가지 기능을 쓰는 순서가 있는데,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주기능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많이 쓰는 기능
- 부기능 주기능을 돕는 두 번째 무기
- 3차 기능 부기능의 반대편에 있는 기능. 덜 익숙하지만 의식하면 꺼내 쓸 수 있음
- 열등기능 주기능의 반대편에 있는 기능. 가장 덜 다듬어져 있고, 스트레스 때 서툴게 튀어나옴
ISTJ로 보면 주기능은 감각(S), 부기능은 사고(T)입니다. 3차 기능은 부기능 T의 반대인 감정(F), 열등기능은 주기능 S의 반대인 직관(N)입니다. 그 부장님이 쉰 넘어 새로 꺼내 쓰기 시작한 것이 바로 3차 기능 F였습니다.
3차 기능은 '부족한 기능'일까?
MBTI 결과지를 보면 3차 기능은 내가 잘 쓰지 않는 쪽에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이 3차 기능을 '내가 못하는 것', '나와 상관없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ISTJ인 분께 "감정 기능도 있으시잖아요"라고 하면 대개 손사래를 칩니다.
하지만 3차 기능과 열등기능은 분명히 다릅니다. 열등기능은 평소 거의 의식하지 못하다가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 통제되지 않은 채 튀어나오는 기능입니다. 반면 3차 기능은 덜 익숙할 뿐, 내가 마음먹으면 꺼내 쓸 수 있는 기능입니다. 서툴러도 내 손으로 쥘 수 있다는 점에서 열등기능보다 훨씬 다루기 쉽습니다.
열등기능이 스트레스가 꺼내는 기능이라면, 3차 기능은 내가 꺼낼 수 있는 기능입니다.
왜 나이가 들면서 3차 기능일까
MBTI의 바탕이 된 융(Carl Jung)의 이론에서는 인생의 전반부에 주로 주기능과 부기능을 키우고, 중년 이후에 덜 쓰던 기능들을 발달시키며 더 균형 잡힌 사람이 되어 간다고 봅니다. 젊을 때는 내가 가장 잘하는 것으로 자리를 잡아야 하니 주기능과 부기능에 집중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그 부장님도 20~30대에는 꼼꼼한 기록(S)과 정확한 판단(T)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 두 기능이 충분히 자리 잡은 뒤, 후배를 키워야 하는 자리에 오르자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F가 필요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부장님은 그걸 피하지 않고 연습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부장님이 F를 쓰기 시작했다고 해서 S와 T가 약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여전히 숫자로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그 숫자를 전하기 전에 사람을 먼저 보셨을 뿐입니다. 3차 기능은 원래의 나를 바꾸는 게 아니라 원래의 나에 한 칸을 더 얹는 일이었습니다.
내 3차 기능은 무엇일까
3차 기능은 부기능의 반대입니다. 16가지 유형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유형 | 주기능 | 부기능 | 3차 기능 | 열등기능 |
| ISTJ, ESTP | S | T | F | N |
| ISFJ, ESFP | S | F | T | N |
| INTJ, ENTP | N | T | F | S |
| INFJ, ENFP | N | F | T | S |
| ISTP, ESTJ | T | S | N | F |
| INTP, ENTJ | T | N | S | F |
| ISFP, ESFJ | F | S | N | T |
| INFP, ENFJ | F | N | S | T |
같은 칸에 묶인 두 유형은 기능의 순서는 같고, 각 기능을 쓰는 방향(내향·외향)만 다릅니다.
3차 기능 키우기, 이런 분께 권합니다
3차 기능은 아무 때나 키우라고 권하지는 않습니다. 주기능과 부기능이 아직 자리 잡지 않은 상태에서 3차 기능까지 신경 쓰면, 오히려 내 강점이 흐려지고 혼란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아래에 해당하는 분이라면 한번 시작해 볼 만합니다.
-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그다음으로 무엇을 잘하는지 분명히 안다.
- 일이나 생활에서 그 두 가지로 이미 인정받은 경험이 있다.
- 요즘 들어 "나는 왜 이런 건 늘 어려울까" 하는 영역이 반복해서 눈에 띈다.
- 역할이 바뀌었다. 후배를 이끌게 됐거나,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자녀가 독립했다.
3차 기능별로 시작해 볼 작은 연습
| 3차 기능 | 작은 연습 |
| S (감각) | 하루 한 번 휴대폰 없이 산책하며 보이는 것, 들리는 것을 세 가지 적어 보기. 요리나 정원 가꾸기처럼 손으로 하는 취미 갖기 |
| N (직관) | "만약 ~라면?" 질문을 하루 하나 던져 보기. 평소 안 읽던 분야의 책 한 권 읽기 |
| T (사고) | 마음이 가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장단점을 표로 한 번 써 보기. 가계부처럼 숫자로 정리하는 습관 들이기 |
| F (감정) | 피드백 전에 상대의 수고를 먼저 한 문장 말하기. 가족이나 동료에게 "요즘 어때?"를 먼저 묻기 |
그 부장님의 첫 연습도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보고서를 돌려주기 전에 한 문장을 먼저 건넨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말투가 딱딱했지만, 몇 달이 지나자 후배들이 먼저 부장님을 찾아가 고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3차 기능은 열등기능으로 가는 다리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 더 좋은 점이 있습니다. 3차 기능을 다듬어 두면 스트레스 상황에서 열등기능이 터져 나올 때도 덜 흔들립니다. 주기능만으로 버거울 때 부기능을 꺼내고, 그래도 안 되면 3차 기능까지 꺼낼 수 있다면, 다듬어지지 않은 열등기능이 앞으로 나올 일이 줄어듭니다. 쓸 수 있는 도구가 하나 더 생기는 셈입니다.
주기능과 부기능으로 나를 세웠다면, 3차 기능은 그 위에 나를 넓히는 일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잘하는 것만 하는 게 아니라, 덜 익숙한 것까지 품을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여러분의 3차 기능은 무엇인가요? 나이가 들면서 예전엔 없던 모습이 생겼다고 느끼신 적이 있다면 댓글로 나눠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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