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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영업을 하던 시절, 함께 일한 후배 중에 유난히 말이 딱 부러지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회의에서 누가 실수하면 "그건 원인이 두 가지예요"라며 바로 분석부터 했고, 바이어와의 가격 협상에서도 감정이 끼어들 틈이 없었습니다. MBTI 검사 결과도 T(사고)였습니다. 저도 그 친구를 의심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을 같이 일하다 보니 이상한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오늘은 그 친구 이야기로 '원가족의 MBTI'를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MBTI 원가정

T인데 이상하게 지쳐 보였던 순간들

그 후배는 동료의 실수를 정확하게 짚고 난 뒤에 혼자 오래 마음을 썼습니다. 회의가 끝나면 "아까 제가 너무 세게 말했죠?"라고 묻곤 했습니다. 바이어와 협상을 잘 마친 날에도 상대가 기분 상하지 않았을지 걱정하며 메일을 몇 번이나 고쳐 썼습니다.

T 성향이 강한 사람에게도 이런 면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말할 때보다 말하고 난 뒤가 훨씬 힘들어 보였습니다. 논리로 말하는 건 잘하는데, 그게 편해 보이지는 않았던 겁니다.

 

회식 자리에서 들은 집안 이야기

어느 출장길 저녁, 그 친구가 가족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아버지는 엔지니어, 어머니는 회계 일을 오래 했고, 형도 개발자라고 했습니다. 가족 넷이 모두 검사를 해 봤는데 그 친구를 뺀 세 사람이 전부 뚜렷한 T였다고 합니다. 사실 그 친구도 처음에는 F가 나왔는데, 몇 번 다시 해 보니 T로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어릴 때 속상하다고 울면 아버지가 '그래서 뭐가 문제인지 말해 봐'라고 하셨어요. 감정을 말하면 대화가 안 됐고, 이유를 정리해서 말해야 들어 주셨어요. 그래서 그렇게 말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그 친구가 보였습니다. 타고난 결은 F에 가까운데, 집안에서 통하는 언어가 T였기 때문에 T를 생존 기술처럼 익힌 사람이었던 겁니다.

 

MBTI는 '선호'이지 '지금 쓰는 모습'이 아닙니다

MBTI가 말하는 성향은 오른손잡이·왼손잡이처럼 '더 편하게 손이 가는 쪽'을 뜻합니다. 왼손잡이도 오른손잡이만 있는 집에서 자라면 오른손으로 글씨 쓰는 법을 익힙니다. 능숙해질 수는 있지만, 오래 쓰면 더 쉽게 지칩니다.

성격도 비슷합니다. 가족 모두가 같은 성향을 쓰는 집에서는 그 성향이 '정답'처럼 느껴집니다. 다른 성향을 타고난 아이는 자연스럽게 가족의 언어를 배우고, 어른이 되어 검사를 하면 배운 쪽이 결과로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검사 결과만으로는 그 사람을 절반만 이해하게 됩니다.

 

학습된 성향일 수 있다는 신호

물론 원가족과 같은 성향이 나왔다고 모두 학습된 건 아닙니다. 다만 아래와 같은 모습이 겹친다면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볼 만합니다.

  • 잘하는데 지친다 그 성향을 쓸 때 결과는 좋지만, 끝나고 나면 유난히 기운이 빠집니다.
  • 검사할 때마다 결과가 흔들린다 특히 그 지표만 경계선 근처를 오갑니다.
  • 편한 사람 앞에서 달라진다 가까운 친구나 배우자 앞에서는 전혀 다른 성향이 나옵니다.
  • 어린 시절에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감정을 말하면 혼났거나, 즉흥적으로 움직이면 꾸중을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 가족 MBTI 지도를 그려 보세요

그 후배와 이야기를 나눈 뒤, 저는 MBTI 이야기를 할 때 가족 이야기도 함께 묻습니다. 표 하나로 정리해 보면 의외의 그림이 보입니다. 그 친구의 가족을 예로 들면 이렇습니다.

가족 T / F 집에서 자주 하던 말
아버지 T "그래서 결론이 뭐야?"
어머니 T "울지 말고 이유를 말해 봐."
형 T "그건 논리적으로 안 맞잖아."
본인 F → T로 학습 속으로는 "내 마음은 어떤지 먼저 물어봐 줬으면"

T/F뿐 아니라 다른 지표로도 해 볼 수 있습니다. 모두가 J인 집에서 자란 P는 계획표를 열심히 쓰지만 늘 숨이 막히고, 모두가 E인 집에서 자란 I는 사람 만나는 걸 잘해도 집에 오면 녹초가 됩니다. 칸마다 '집에서 자주 하던 말'을 함께 적어 보면,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가 더 선명해집니다.

 

가족을 탓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 후배의 부모님은 아이를 아끼는 방식이 T였을 뿐입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어서 "뭐가 문제인지 말해 봐"라고 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그 친구는 해외 바이어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논리를 갖게 됐습니다. 학습된 성향은 상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사람이 가진 또 하나의 능력입니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쉴 곳이 어디인지 아는 겁니다. 저는 그 후배에게 피드백을 줄 때 결론보다 "요즘 어때?"를 먼저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 질문 하나에 표정이 풀리는 걸 보면서, 이 친구에게 필요했던 건 분석이 아니라 공감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누군가를 진짜로 이해하고 싶다면 그 사람의 MBTI만 보지 말고, 그 사람이 자란 집의 MBTI도 함께 보세요. 지금의 모습이 타고난 결인지, 살아남기 위해 배운 언어인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의 가족은 어떤 성향이 많은가요? 가족과 다른 성향이라 애써 맞춰 온 부분이 있다면 댓글로 나눠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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