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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에 또 뵙죠.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첫 미팅에서 그 바이어는 쉬지 않고 이야기했습니다. 회사 이야기, 시장 이야기, 지난 전시회에서 있었던 일까지 꺼냈습니다. 질문도 먼저 던지고 분위기도 먼저 띄웠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분은 E구나' 하고, 다음 만남을 긴 저녁 자리로 잡았습니다. 식사 뒤에 갈 바까지 미리 알아 두었고요.
그 저녁은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9시가 넘자 대답이 눈에 띄게 짧아졌고, 2차 자리에서는 휴대폰을 자주 들여다봤습니다. 다음 날 보낸 메일에는 평소보다 며칠 늦게 답장이 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은 I였습니다.
지난번 I와 E 글에서 "I형은 짧고 편하게, E형은 길고 넉넉하게" 만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그 말에 꼭 붙여야 하는 단서 이야기입니다. 같은 I라도, 같은 E라도 어떤 부분에서는 반대쪽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MBTI Form Q에서는 이런 결과를 OOPS라고 부릅니다.

네 글자 안에 숨어 있는 반대쪽 모습
Form Q는 네 가지 지표를 각각 다섯 개의 세부 척도로 나눠서 봅니다. I와 E 지표의 다섯 가지를 쉽게 풀면 이렇습니다.
- 먼저 다가가는가, 다가오기를 기다리는가 (Initiating – Receiving)
-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는가, 안에 담아 두는가 (Expressive – Contained)
- 넓게 사귀는가, 좁고 깊게 사귀는가 (Gregarious – Intimate)
- 직접 부딪히며 익히는가, 먼저 생각하며 익히는가 (Active – Reflective)
- 활기를 밖으로 내보이는가, 차분하게 머무는가 (Enthusiastic – Quiet)
전체 결과가 I로 나와도 다섯 가지가 모두 I 쪽으로 나오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다섯 개 가운데 한두 개가 E 쪽으로 나오는 경우를 흔하게 봤습니다. 이렇게 전체 선호와 반대쪽으로 나온 세부 척도를 OOPS(Out-of-Preference Score, 선호 밖 점수)라고 합니다.
OOPS가 있다고 해서 유형이 잘못 나온 건 아닙니다. 에너지를 어디서 채우는지는 그대로입니다. 다만 겉으로 보이는 행동 하나가 반대쪽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런데 처음 만난 사람은 대부분 그 행동 하나를 보고 상대를 판단합니다. 오해는 거기서 시작됩니다.
먼저 말을 거는 I, 처음 30분만 보고 판단했을 때
앞에서 말씀드린 바이어가 이런 경우였습니다. '먼저 다가가는' 쪽과 '드러내는' 쪽이 E처럼 나오는 I에 가까운 분이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침묵이 흐르는 게 불편해 먼저 말을 꺼내고,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이끄는 역할을 맡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은 '에너지를 쓰는 중'이었습니다. 첫 30분의 활발함은 미리 채워 둔 에너지를 꺼내 쓰는 모습이었지, 사람을 만나면서 에너지가 차오르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 뒤로 이분과의 약속은 점심 자리로 바꿨습니다. 대화는 여전히 이분이 이끌었고, 점심이 끝날 때까지 표정도 밝았습니다. 같은 사람과 같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바꾼 건 시간 하나였습니다.
해외영업을 하다 보면 이런 분을 생각보다 자주 만납니다. 특히 영업이나 구매를 맡은 분들 중에는 일 때문에 먼저 다가가는 습관이 몸에 밴 I가 많았습니다. 직업이 만든 행동과 타고난 에너지의 방향은 다를 수 있다는 걸 이분을 통해 배웠습니다.
회의에서 말이 없는 E, 관심이 없다고 착각했을 때
반대 경우도 있었습니다.
함께 일하던 한 파트너사 담당자는 회의 내내 거의 말이 없었습니다. 질문을 던져도 "검토해 보겠습니다" 정도로 짧게 답했습니다. 저는 이 제안에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보고, 다음 미팅 자료를 간단하게 줄여서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회의가 끝나고 두 시간쯤 지나 긴 메일이 왔습니다. 회의에서 나온 내용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자기 아이디어를 몇 가지나 덧붙인 메일이었습니다. 다음 통화에서는 처음과 다른 사람처럼 이야기를 쏟아 냈습니다. 알고 보니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행사장에서는 누구보다 먼저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돌아다니는 분이었습니다.
이분은 E였지만 '먼저 생각하며 익히는' 쪽이 I처럼 나오는 경우에 가까웠습니다. 사람을 만나며 에너지를 얻는 건 맞지만, 처음 듣는 내용은 혼자 정리해 본 다음에야 입을 여는 방식이었습니다. 회의실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생각하는 시간이었던 셈입니다.
이 일이 있고 나서는 회의 자료를 하루 전에 미리 보내 둡니다. 생각할 시간을 먼저 주면, 이런 분들도 회의 초반부터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처음보다 끝을 봅니다
두 번 모두 제가 틀린 이유는 같았습니다. 처음 보이는 행동 하나로 에너지의 방향까지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만남의 시작보다 끝을 더 유심히 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표정이 밝아지고 말이 늘어나는지, 아니면 처음의 활기가 조금씩 줄어드는지를 봅니다. 행동은 OOPS 때문에 반대로 보일 수 있지만, 에너지가 오르는지 내려가는지는 쉽게 감춰지지 않았습니다. 헤어진 뒤의 반응도 힌트가 됩니다. 만난 다음 날 연락이 더 활발해지는 사람이 있고, 며칠 조용히 쉬었다가 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작은 행동을 보고, 판단은 에너지를 보고.
처음 만난 상대 앞에서 제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입니다.
Form Q 결과지를 받아 보신 분이라면, I와 E의 다섯 척도 중 어디가 반대쪽으로 나왔는지 한번 확인해 보세요. "나는 I인데 왜 사람들이 나를 E로 볼까" 하던 의문이 거기서 풀리기도 합니다. 물론 세부 척도까지 본다고 한 사람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결과는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대화의 실마리 정도로 두시면 좋겠습니다.
혹시 주변에 '말 많은 I'나 '조용한 E'가 있으신가요? 처음에 어떻게 오해하셨는지 댓글로 들려주시면 다음 글에서 함께 풀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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